시작부터 위기였던 헤븐힐 증류소 이야기 -상편-

제-가 한동안 버번 증류소에 관한 이야기를 안하고 버번위스키를 마시기만 했습니다- 계속 마시면 간-이 위험하니까 조금 쉬어가는 의미로 증류소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많은 버번 증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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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에

1996년 그 사건 직전까지

이야기를 했죠?

 

그럼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하늘이 질투했던

천국의 언덕.

헤븐힐 증류소 이야기

그렇게 다 가져갔어야만 속이 후련했!냐!

1996. 헤븐힐에는

존망을 논해야 하는

큰 사건이 일어나게 됩니다.

안돼! 버번이 하늘로 간다!

뉴스에도 아주 크게 나갔던

96년 헤븐힐 화재였습니다.

96117.

비가 내리는 와중에

번개가 내리쳤고- 운명처럼

숙성고에 불이 붙었습니다.

불은 고도수의 알콜과

숙성고의 알콜 증기를 먹이 삼아

삽시간에 번졌고

이윽고 증류소 전체를 삼켜 나갔습니다.

불은 헤븐힐 증류소의

위스키 3000만리터를 집어삼켰고

오크통은 불과 만나 터지면서

별똥별처럼 하늘을 날아다녔습니다.

 

이때의 충격 때문인지

최초 설립자였던 샤피라 5형제중

마지막 생존자였던

조지 샤피라 옹께서 세상을 등지십니다.

1904-1996

화재로 인해 모든 것을 잃은

헤븐힐 증류소-

언론 발표상으로는

1935년부터 지켜온

효모를 지켜낸게 유일한 소득이라지만

맛을 보면 못지킨 것 같은데..?

정작 중요한 증류시설이 없었습니다.

하지만-헤븐힐의 화재 소식을 듣고

증류소의 마스터 디스틸러로서

함께 해왔던 짐빔 증류소

지근거리에 있는 바톤증류소

잭다니엘로 유명한 브라운 포먼까지

헤븐힐 증류소가 재건되기까지

자사의 증류시설을 사용하고

재건을 도왔습니다.

5252-도우러 왔다구

증류 시설을 사용하면서

재건준비를 하던 헤븐힐은

1999.

켄터키에서 가장 처음으로

증류소 면허를 부여받은

번하임(Bernheim) 증류소를 인수하여

이때부터 자체 증류를 시작하게 됩니다.

이때부터 만들어진 배럴에 붙은 DSP-KY-1

이에 이어서

그 유명한 버번을 인수하는데, 그게

패피 밴 윙클과 같은 스티츨 웰러 출신인

올드 피츠제럴드(Old Fitzgerald)

이것도 떡상한 버번

그 뒤로도 2004년에는

버번 헤리티지 센터를 걸립하는 등

방문자 유치에 힘쓰기도 했습니다.

방문자들을 위한 체험공간을

늘려가던 헤븐힐은

2013년에 켄터키 루이빌 지역에

에반윌리엄스 익스피리언스를

(Evan Williams Bourbon Experience)

건립하여 대중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가는 계기를 마련하였습니다.

가보고 싶다

2014에는 계속 늘려가던

주류 브랜드들과

증류소를 분리하고 싶었는지

80주년을 하루 앞두고

기존의 헤븐힐에서

헤븐힐 브랜드로 명칭을 개정하고

로고도 새로 발표했습니다.

이 밑에 보드카나 리큐르가 많습니다

2018년에는 헤리티지 센터의 증축등

더 많은 투자를 진행 했습니다.

 

최근-소식은 썩 좋지 못합니다.

2021911일 헤븐힐증류소 노동자 조합이

계약조건등에 항의를 하면서

파업을 진행했는데요.

다행히 동년 1023일에 노사합의가 잘 돼서

마무리 됐다고 합니다.

파업 멈춰!

헤븐힐 증류소는

개인적으로 콜라 타먹을 때

가장 맛있는 버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전 세계인들이 그런건지

이를 증명하듯

헤븐힐 증류소가 켄터키주에

지불하는 세금은

1주일에 80(700만 달러)정도입니다.

시작부터 위기였고

증류소가 다 타버려서

예전 증류소는 방문자 센터 정도로

사용하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항상 그 위기를 극복하면서

천국을 보여주고있는 헤븐힐 증류소.

최근에 한국에 정식 수입되면서

알려진 버번 브랜드이지만

더 많은 제품군이 저렴한 가격에

한국 시장에 풀리기를 기대해 봅니다.

다 마쉬따

지금까지 알아두면 쓸데있는

버번쟁이 클라이머가 들려주는

술에 관한 이야기

버클술이의 버클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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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한동안

버번 증류소에 관한 이야기를

안하고 버번위스키를

마시기만 했습니다-

계속 마시면 간-이 위험하니까

조금 쉬어가는 의미로

증류소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많은 버번 증류소 중에서

무슨 증류소를 할까-하다가

제가 아는 주류 블로거 중에서

한조님께서 헤븐힐 증류소 역사를

다뤄달라고 요청하셔서-

그래서 다뤄 보겠습니다.

헤븐힐 증류소

(Heaven Hill Distillery)

콜라 타먹을 때 맛있는 버번들

헤븐힐 증류소의 역사는

금주법이 1933년에 끝나고

버번업계가 초토화된 시점에서

시작됩니다.

그 이전 버번- 궁금합니다

1929년부터 지속된

미국발 경제 대공황은

금주법마저 무너뜨렸지만

그 암울한 상황은 여전했었습니다.

1929년 10월 29일 검은 화요일 직후 월가 모습

그러나 큰일을 일으키는 사람들은

시국이 어려울 때 일을 도모하는 법.

버번 업계를 주목하고있던

5형제가 있었으니-

아 너네 말고

데이비드, 에드, 캐리, 조지, 모우즈

(David, Ed, Gary, George, Mose)

샤피라(Shapira) 5형제입니다.

샤피라 5형제는

버번증류소들이 문을 닫아서

경쟁자들이 없어진 그 당시를

좋은 시기로 보고

증류소 부지를 물색했었습니다.

위기는 곧 경쟁자가 없는 것을 의미하지

그러던 1935.

여러명의 투자자들과 함께

켄터키 바즈타운 남부 농장부지를

윌리엄 헤븐힐에게서 매입하여

12명의 직원과 함께

증류소를 세우게 됩니다.

최초의 헤븐힐 증류소 모습

증류소 설립 당시의 헤븐힐 증류소 이름은

Old Heavenhill Springs Distillery

(올드 헤븐힐 스프링스 디스틸러리)

 

그리고 같은 해 1213.

첫 번째 배럴을 채우고,

스트레이트 버번의 최소 숙성년수인

2년을 채운 후 출시하여

꽤 괜찮은 평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2년 뒤 4년 숙성 버번을

내놓으면서 빠르게 수익금을

쌓아 나갔습니다.

2020 년 기준으로  9 백만 배럴을 생산했습니다 .

이렇게 쌓인 수익금들과

기존에 형제들이 가지고 있던

자본금으로

투자자들의 지분까지 모두 사들여서

완벽하게 가족기업 증류소로

출범하게 됩니다.

증류소들의 암흑기 그 두번째

잘 나가던 헤븐힐은

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바로 2차 세계대전에 미국이 참전하면서

1942에 버번 증류를 금지당하고

전쟁용 알코올 생산을 받습니다.

1945년 8월 15일. 광복.

1945년에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끝으로

2차 세계대전이 막을 내리게 되고

헤븐힐 증류소도 예전처럼

버번을 생산하게 됩니다.

그러던 중 기존 마스터 디스틸러였던

해리 빔의 사촌이었던

공식 초대 마스터 디스틸러. 이때만 해도 헤븐힐은 DSP-KY-31

얼 빔(Earl Beam)

마스터 디스틸러로 영입하게 됩니다.

 

마스터 디스틸러도 영입했겠다

순조롭게 증류를 하면서

1955930일에는

50만 배럴을 생산하게 되고

그로부터 2년 뒤, 1957.

하나의 버번이 출시 되는데-

그게 바로

헤븐힐을 현재도 먹여살리는

헤븐힐의 파이프라인.

에반 윌리엄스(Evan Williams)

에반윌리엄스 체험관도 있습니다

대 히트를 치게 된

헤븐힐 증류소.

1960년에는 기존 마스터 디스틸러였던

얼빔의 아들인

파커 빔(Parker Beam)

마스터 디스틸러가 되기 위해 합류하게 되고

그 이듬해 721일에

100만번째 배럴을 채우게 됩니다.

진정한 가족계승

68년에는 150만번째 배럴을 채우고-

1960년에 입사했던 파커 빔

1975. 아버지인 얼 빔에 이어서

헤븐힐의 마스터 디스틸러가 됩니다.

 

하지만- 이 시기에는

버번에 또 불어닥친 이벤트가 있었으니-

바로 Glut era.

보드카나 진 열풍이 불면서

버번은 노땅들이 마시는 술

이라는 인식으로 안팔리던 시기였습니다.

 

이 시기에 대부분의 버번이

재정난에 허덕이고

보드카나 진을 따라잡겠다고

light whisky를 내놓는 등

맛이 아주 엷습니다

살아나기 위한 궁여지책을 내놓는데

헤븐힐만큼은

버번에 맛을 더하고

에반윌리엄스를 콜라에 타먹고

상쾌해지는 그런 이미지를 광고하여

젊은 술편안한 술임을 강조했고

버번 증류소들 중에 유독 에반윌리엄스만

판매량이 상승한 전례가 있습니다.

 

점점 회복해가던 와중

1983년에는 선대 마스터 디스틸러인

파커 빔의 아들인

크래이크 빔 (Craig Beam)

증류소에 합류하게 됩니다.

역시 마스터 디스틸러가 되기 위해서-

또 다시 빔 가문이 마스터 디스틸러로 -

위기를 극복하고-

승승장구하게 되는 헤븐힐-

1989에는

벌넷 진(Burnett’s Gin)

헨리멕케나(Henry McKenna)

할우드 캐나다 위스키

(Harwood Canadian whisky)

인수하게 됩니다.

그 맛있는 헨리멕케나가 이때!

그 이후에도 1993, 차례대로

필라델피아 블렌디드 위스키,

캐빈 스틸 버번, J. W. Dant 버번이나

Copa De Oro coffee 리큐르,

Dubonnet Aperitif,

Coronet VSQ brandy등을 인수해 나갑니다.

 

하지만 잘 나가던 헤븐힐-

존망을 결정짓게 되는 일이 일어나는데,

1996-

바로 그 사건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 이야기는 다음시간에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알아두면 쓸데있는

버번쟁이 클라이머가 들려주는

술에 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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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시간에

윌렛증류소의 파산-

즉 문 닫은 얘기 까지 했습니다.

 

원래는 자체증류 증류소. 윌렛증류소 이야기 - 상편

많이 늦었습니다- 바쁘다 보니 글을 못올렸네요- 한동안-술 리뷰를 많이 했는데 정작 술 이야기는 안했죠 그래서 이번에 해볼 이야기. 다른 어디서도 따로 다루지 않은, 그리고 제가 좋아하는 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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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이어서

KBD로부터 시작되는

윌렛 증류소 이야기.

시작하겠습니다.

윌렛버번 원해요-

Glut era를 피하지 못하고.

1981년 파산하게 된 윌렛 증류소는

톰슨 윌렛의 딸 마사 윌렛과

한 사람의 데릴사위

이반 컬스빈(Evan G. Kulsveen)에 의해

역전의 방아쇠를 당기게 된다.

사위의 감각이 훌륭했다고 한다

14살에 노르웨이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컬스빈은

최초에는 병 만들던 사람이었다.

그러다 마사윌렛과 결혼을 하게 되고

198471

톰슨 윌렛에게서

망해서 문을 닫았던

윌렛 증류소를 인수하게 되고,

이름을 바꾸게 되는데,

그 이름이

Kentucky Bourbon Distillers (KBD)

DSP-KY-78이라는 증류소 번호를

부여받는다.

증류소 고유번호는 증류기에 붙는다

하지만-이때 윌렛증류소는

정확히는 컬스빈은

증류를 하지 않는

과감한 선택을 하게 된다.

기존 버번을 블렌딩해서 판매-

초기에는 기존에 있던

윌렛 증류소 숙성고에 있는

허니배럴들을 블렌딩해서

버번제품들을 냈다.

 

그러나 증류해놨던 배럴은

무한하지 않으니-

증류해놨던 버번이 떨어지자

컬스빈은 주변 증류소에 있는

숙성고 속 허니배럴들을 찾아 나섰고

허니배럴들을 가져와

블렌딩 하기 시작했다.

병에 보면 distilled/bottled가 써있다.

그런데-

어떻게 배럴을 내주는 증류소가 많냐?

하면 당시는 아직 glut era라서

배럴이 남아나던 시기라

배럴을 사주면 감사한 시기였다.

그럼 그 많은 배럴을 사서

어디에 팔아?

라고 한다면-

미국 버번산업을 살린 국가-

쟈팡-

일본에다가 팔았고,

일본 전용 라인업들도 존재했다.

일본에 가져다 팔기 위해서

컬스빈은 밤이 되면

일본어를 공부했을 정도라고 한다.

밤에 일본어 공부하는 이유가..쿨럭쿨럭

 

그리고 1990년대에 들어서는

KBD의 대 히트 작품인

스몰배치 시리즈를 출시하게 된다.

그 라인업이

내가 좋아하는 노아스밀,

그리고

로완스 크릭, 켄터키 빈티지,

퓨어 캔터키 4.

구형 노아스밀도 엄청 맛있지-

그러던 2003,

지금의 마스터 디스틸러이자

전 마스터 디스틸러의 아들인

드류 컬스빈(Drew Kulsveen)

이 증류소 일을 시작하게 된다.

2년 뒤인 2005년에는

Even Kulsveen의 딸인

브릿 컬스빈 차베인

(Britt Kulsveen Chavanne)

그리고 남편인

헌터 차베인(Hunter Chavanne)

이 증류소 일에 합류하게 된다.

 

그로부터 3년뒤

2008

KBD는 희대의 역작을 출시하는데,

윌렛 패밀리 에스테이트

보틀드 버번.

(Willett Family Estate

Bottled Bourbon)

증류없이 대히트 친 버번

이에 더해서

윌렛 패밀리 에스테이트 보틀드

라이

그리고 윌렛 팟스틸 리저브도

출시하게 된다.

최근에도 많이 보이는 녀석들

이대로 좋은 평을 많이 받게 된

KBD2011

방문자센터를 오픈하고

숙성고를 보수하게 된다.

증류를 할 준비하는건가-

2012년에 현 마스터 디스틸러인

드류 컬스빈의 아내인

자넬 컬스빈(Janelle Kulsveen)

증류소 사업에

합류하게 된다.

gift shop과 tasting room을 담당

20121

드디어 윌렛증류소가

증류기에 다시

불을 붙이게 된다.

증류소로서 다시 내딛는 첫 발걸음

2012127.

드디어 숙성고에 넣게되는

첫 배럴. (Barrel No.1)

드디어 첫 배럴 생산!

2014년에는

10000번째 배럴을 생산하고

같은 해 1031일에는

Willett

Exploratory cask finished whiskey

를 출시하고,

맛이..궁금하다-

2015년에는

윌렛 라이 2짜리를

출시한다.

 

그 다음해인

2016317에는

윌렛버번 4년숙성

출시하게되는데,

이 보틀부터가

윌렛 팟스틸에서 처음 생산한

윌렌 버번이다.

드디어 자체증류 버번의 시작!

같은해에는

이들 위스키의

시작이라고 할 수있는

올드 바즈타운 90proof

재출시하게 되고,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지난 상편과 더불어서

오늘까지 윌렛증류소-

이야기를 모두 마쳤습니다.

역사를 알아보니

생각보다 역사가 긴 듯 짧고

또 짧다기엔 긴 그런 증류소였습니다.

자체증류를 할때에도 평이 좋았지만

블렌딩을 하면서 엄청난

인기를 얻었고, 지금까지도

윌렛증류소의 구형 보틀은

조지 티 스택만큼

혹은 그 이상 맛있다-”

라는 사람이 있을 정도입니다.

또 윌렛증류소는

제가 좋아하는 버번중에 하나인

노아스밀이 있는

증류소 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생산량이 적어서

최근에 한국에 들어오는 물량이

없을거라는 소식이 들려서

슬프기만 합니다..

 

지금까지 알아두면 쓸데있는

버번쟁이 클라이머가 들려주는

술에 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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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번의 새로운 행정구역, 우드포드리저브 디스틸러스 셀렉트 버번 리뷰/후기/테이스팅노트

21년 하반기 마지막 주류박람회. 서울 바&스피릿쇼 방문기/후기 21년 11월 와인앤모어 할인 주류 리스트 언젠가부터 시작해서 정규 컨텐츠가 된 와인앤모어 할인 주류 시리즈. 하지만 이번엔 주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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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진행한

우드포드리저브 리뷰.

이 글이 갑자기

유입이 많아져서 뭐지?

하다가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 내가 우드포드리저브

역사 이야기를 안했구나!

그래서 늦은 감이 있지만

꺼내보는

 

우드포드리저브(WOODFORD RESERVE).

이야기.

 

부활 전문 버번-

우드포드리저브의 이야기는

179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792, 버지니아로 이주해온

일라이자 페퍼라는 농부가

이 일대에서 증류소를 해먹고

살고 있었다.

 

1792하면 생각나는

바튼의 1792가 생각나는데

이 때 즈음에 버지니아주 지역 중

일부가 켄터키주가 된다.

1792년을 기점으로 바뀌었다.

이 일라이자 페퍼는

잉여작물로 위스키를 만들다가

점점 감당이 안되다보니

1812, 정식으로 땅을 사서

증류소를 설립하는데,

그게 지금의 우드포드리저브

증류소 부지이다.

여기도 뭐 꽤 오래 됐다.

이 일라아자 페퍼의 사망 뒤에

그 아들인 오스카 페퍼가

증류소를 물려받고,

이름을 올드 오스카 페퍼 증류소

라고 바꾼 뒤에

증류소는 잘나가기 시작한다.

이때도 전성기-

그 이유인 즉슨-

아주 뛰어난 위스키 장인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가 바로

제임스 크로(James Crow).

내가 뭐 했냐면

이 사람의 업적은

현대 버번업계에서

거의 공식처럼 쓰이는

1차 증류 후에 남은 찌꺼기를 활용해

발효 효율을 높이는

사워매쉬(Sour mash)방식을

가장 처음 완성한 일이다.

사워매쉬는 이제 공식이다.

게다가 이 사람이 들여온게

지금도 우드포드리저브의 상징인

구리 단식 즐류기로

세 번 증류하는 그 시스템.

생산량이 딸리긴 하지만-

그러나 흥이 있으면 망이 있다고,

오스카 페퍼 사망 이후에

증류소가 점점 망하기 시작한다.

오스카 페퍼의 증류소를

물려받은 사람이 누구냐하면

올드패션드를 가장 먼저 뉴욕에 알린 자.

당시 15세였던 James E. Pepper

15살짜리가 경영에 대해서

모르고 돈 씀씀이는 크고

이러다 보니 결국 빚을 못갚고

1878년에 래브로트 앤 그레이엄

(Labrot & Graham)

에 매각되고 만다.

이 뒤로 정신차린 제임스는

따로 증류소를 차리게 되고

올드페퍼 증류소

또 유명해지게 된다.

이거 마쉬따

다시 우드포드리저브 이야기로

돌아와서, 1941

지금의 모회사인

브라운포먼에 인수된다.

캬아-버번중에 최대 기업일듯

하지만, 브라운포먼 버프에도

이기지 못하던 시기가 있었으니

1960년에서 1980년까지 있었던

Glut era.

버번이 안팔리던 시기에

브라운포먼은 올드 오스카 페퍼 증류소를

매각하고 만다.

그것도 그냥 그 지역 농부한테..

이렇게 방치돼 있던 증류소는

1993년 버번 붐의 태동에 맞춰서

브라운포먼에 의해 다시 인수되고

증류소 이름도 우리가 알고있는

우드포드 리저브가 된다.

게다가 예전에 만들던

그 방식 그대로.

사워매시에

구리 단식 증류기로 3번 증류하고,

거기에 더해서 1830년경

올드 오스카 페퍼시절 지었던

석회로 만든 숙성고까지.

드디어!

구리 단식 증류기 뿐만 아니라

우드포드리저브는

사이프러스 나무 발효조에서

발효를 길게 (1주일) 하는 것으로도 유명한데,

이를 정립한 사람이

우드포드리저브를 살려놨다고 평가받는

브라운포먼 1대 마스터 디스틸러

링컨 헨더슨(Lincoln Henderson)

훗날 엔젤스 엔비의 창업자가 된다.

우드포드리저브의 효모 특성상

1주일 이상 발효를 해야

가장 맛이 좋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거기다가

링컨핸더슨은

우드포드리저브 초기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하는데,

우드포드리저브 증류소를

가동한 뒤 6년정도 까지는

증류소의 위스키를 판매할 수 없으니

같은 브라운 포먼의 숙성고인

올드포레스터 증류소의 숙성고에서

허니배럴들을 찾아내서

우드포드리저브로 병입 하는 등

우드포드리저브를 마셨을 때

이 버번은 맛있다!

알리기 위한 노력을

많이 기울인 인물로도 유명하다.

glut era여서 배럴이 쌓여있었다

우드포드리저브는

증류소 역사 자체는 길지만

그 브랜드 자체의 역사는

30년도 되지 않았기 때문에

역사가 길지는 않지만,

그만큼 마케팅에 엄청 신경 쓴

브랜드.

켄터키-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스포츠

켄터키 더비.

이 켄터키 더비를 1999년부터 공식 후원하는,

2018년부터는 타이틀 스폰서 자격도

얻어낸, 켄터키 더비와 민트쥴렙으로

엄청 유명해진 버번 브랜드이기도 하다.

켄터키더비 에디션도 있다.

이렇게 짧은 역사에도

많은 각광을 받은 버번

우드포드 리저브.

1993년 증류소를 인수하면서

당시 브라운포먼 CEO

오슬리 브라운이 남긴

“세상이 깜짝 놀랄만한 버번위스키를 바로 이곳에서 다시 만들겠습니다.”

그 말로부터

2대 마스터 디스틸러인

크리스 모리슨이 남긴 인터뷰였던

“우드포드 브랜드를 출시하고 나서 14년간 계속 적자만 봤습니다.”

14년의 시간 안에서 적자가 남에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들의 방식을 고수하며

어떠한 상황에서도

좋은 버번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해온

그들의 이야기를 곱씹으며

오늘의 이야기를 마치겠습니다.

 

지금까지 알아두면 쓸데있는

버번쟁이 클라이머가 들려주는

술에 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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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오급 잭다니엘. Jack Daniel's single barrel barrel proof 리뷰/후기/테이스팅노트

모두의 첫 버번. Jack Daniel's Old No.7 리뷰/후기/테이스팅노트 이 글로부터 약 일주일. 갑자기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버번으로 넘어갔었죠? 그래서 오늘 마셔볼 버번 혹은 테네시 위스키. 쿠씨

liquorstroy.tistory.com

잭다니엘 이야기가

마지막 버번 얘기였던 것 같습니다-

다음 술을 뭘로하지?

하던 생각 중에

브라운포먼

이들의 술을 해보자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술

같은 브라운포먼 소속의

올드포레스터(Old Forester).

진짜 스테이츠맨 본부가 여기 있나요?

옛날 킹스맨 1에서는

달모어가 나왔었고

마셔보고 싶따-

킹스맨 2에서는

킹스맨 스테이츠맨의 지부가 있는

올드 포레스터가 나왔습니다.

1963년 배럴 하나 구멍 뚫었던데-

킹스맨에 나올 정도로

유명한 이 버번 위스키 증류소

150년도 더 된 증류소,

최초로 유리병에 병입한 버번 증류소

최초의 더블배럴 제품의 시작.

최초의 싱글배럴 제품 출시.

금주법 이전에도, 중에도, 이 후에도

같은 이름으로 위스키를 생산한 증류소

올드포레스터 역사 이야기

지금 시작합니다.

따라와요

올드포레스터의 설립자,

정확히는 Brown Forman의 설립자는

George Garvin Brown.

정확히는 그의 이복형제인

J.T.S Brown과 함께 설립했고,

이외에 조력자로

James Thompson, Henry Chambers,

Jeorge Forman등이 있었다.

내가 설립했다.

G.G. Brown1846년에 태어나서

1863년에 루이스빌로 이사온 뒤

우연히도 매약업에 뛰어들었다가

1870년에 올드포레스터-라는

위스키를 출시하게 됐다.

이때 당시만 해도 회사는

J.T.S. Brown & Bro

라는 이름으로 출시했었다.

 

그럼 올드 포레스터라는 위스키이름은

어디서 온 것이냐, 하면

1870년에 Dr. William Forrester

라는 의사의 이름을 빌려 위스키를 생산하고

Forrester맞다. R이 원래 두개

이 위스키 품질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Mattingly, Mellwood, Atherton

있던 증류소 제품을 병에 담아서

팔기 시작한 것이

최초로 병에 담아서 팔기 시작한

버번. 이때 나온 버번은

지금보다 더 높은 90 Proof (45%ABV)

너무나도 약병 서타일

그러던 1897년에 시행된

미국의 Bottled in Bond(바틀드 인 본드)

이 제도에 맞추기 위해서

세 군데에 있던 증류소를

하나로 할 필요가 있었고

이를 위해 Geroge Garvin Brown

1901년에 Mattingly증류소를

인수하게 된다.

, 바틀인 본드의 조건에 맞게

90proof였던 도수도

100proof로 높이게 된다.

 

최소 바틀인본드에 한 맺힌 분

 

(바틀인본드의 조건은 아래에서 참고할 수 있다.)

 

처음보는 버번이랑 소개팅하기-위스키 라벨 읽는 법

버번이 먼데? 뭐가 다른건데? 이 글 다분히 재미없는 정보, 강의 글이라 반응이 시원치 않지만 아직 이야기가 덜 끝났습니다. 오늘 이야기해볼 주제는 길을 가다가 혹은 인터넷을 하다가 마주친

liquorstroy.tistory.com

이 이후로 1902

George Garvin Brown

1인 소유권을 가지게 되면서

회사의 이름도

J.T.S. Brown & Bro에서

Brown-Forman으로 바꾸게 된다.

대 주류기업, 브라운포먼의 시작이다.

미국 1위 버번 판매 나야나

어휴-

브라운포먼 얘기까지 나오는데

이렇게 오래 걸렸습니다.

영상으로 얘기하면

빠르고 간결하게

5분도 안될 내용이지만-

글로 표현하는건 역시

길어지네요.

오늘 못다한 이야기는

다음편, 하편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히계세요 여러분

지금까지 알아두면 쓸데있는

버번쟁이 클라이머가 들려주는

술에 관한 이야기

버클술이의 버클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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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면조 잡으러 나온 독수리? 이글레어10년 리뷰/후기/테이스팅노트)

이 글을 올린 뒤에

1주일만에 버번이야기로 돌아왔습니다.

오늘 해볼 이야기

드디어 이 주제를 합니다.

버번위스키가 뭔데? 뭐가다른건데?

왜 맛있다고 그러는건데?

왜 바닐라 캬라멜, 오크가 기본 맛인건데?

기준이 뭔데? 등등

버번위스키 전반-에 대해서 다뤄볼까 합니다.

네, 그것을 알려드리죠

아주 크게 말하면

버번위스키는 미국에서 온 위스키-를 말한다.

그런데, 모든 미국위스키가

버번위스키인건 또 아니다.

뭐야? 말장난해?

상관관계를 표시하면

이런-그림.

중학교였나요, 집합을 처음 배웠던게

그런데 이름이 왜 버번이냐-

라고 물으신다면,

설이 몇가지가 있다.

그런데, 가장 유력한 설은

미국 독립전쟁 당시

미국을 도왔던 프랑스의 부르봉(Bourbon)왕가

였는데, 이들을 기리기 위해서

켄터키주에 버번카운티라는 지명을 붙였고,

이 버번 카운티에서 위스키를 많이 생산하다보니

이 지역 위스키가 버번카운티 위스키가 됐고

나중엔 버번이라고 부르게 됐다는 이야기가 있다.

버팔로트레이스 증류소가 있는 위치.

버번위스키가 될 수 있는 조건은

조금 뒤에 설명하고,

역사-먼저 고다 고.

아메-리카

미국 역사는 잘 알려져 있듯이 17세기에

아일랜드 사람들청교도 박해를 피해서

신대륙이었던 아메리카-에 정착하기 시작한게

그 기원.

그래서 버번위스키에는 e가 붙은 위스키가 많다.

외쳐 E!!!

그때 아일랜드 사람들이 처음 정착한 곳이

섬이었는데,

여기 원주민들에게 본인들이 아일랜드에서 만들던

위스키-를 선물하면서 친분을 쌓게된다.

역시 술만큼 빨리 친해지는 건 또 없는듯

하지만,

양조주(최대 15%ABV)만 마시던 원주민 한테는

위스키란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강렬한 자극

40도이상의 알콜에 그 섬의 원주민들이

정신을 못차리고 취한걸 보고

뭐야 쟤네 미친거야? 하면서

, 저기가면 미친놈들 볼 수 있는 섬이야

라는 의미에서 생겨난 지명이

Manahachtanienk(마나하크타니엔트)

오늘 말로는 Manhattan(맨하탄)

맨핻-은. 뉴욕의 이미지가 다 있는 곳

그렇게 그 섬에서

만들었던 위스키를 주다보니 이제 이 땅에서

위스키를 만들어야 할 때가 오게 되는데

이런, 이곳에는 보리가 없었다-

대신 발견한 호밀.

하이-

처음에 호밀로 만들기 시작하는데,

라이 위스키를 마셔보면 알겠지만

풀떼기 맛도 나고, 뭔가 맛이 조금 맵다.

지금 나오는건 아주 나아진거다

자기들이 마시던 달달-한 위스키가 아니어서

실망하던 이주민들.

점점 땅을 서쪽으로

개척하다보니

여기서 매년 실종되는 사람이 많단다.

옥수수를 발견하게 되고

이 옥수수가 달작지근-하니

위스키를 만들어봐야겠다 생각한다.

만들고 나니 달작지근-하고 부드럽고

맛있었다고 한다.

이때부터가 아메리칸 위스키중에서

콘위스키의 시작이다.

조지 워싱턴도 옥수수 농사짓고 위스키 만들었단다-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을하고

조지워싱턴이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는데,

연방정부에는 돈이 없었다.

하는 짓이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데,

우리나라처럼 주세를 올려버린다.

그것도 제조자한테.

우리나라도 민중봉기 해야되나? 교육세는 왜 있는걸까

1791년에 위스키 세금 때문에

시위가 일어나고

이 시위가 발단이 돼서

1794년에 정말로 반란이 일어난다.

이게 그 유명한 위스키반란사건이다.

 

반란은 진압이 됐지만,

세금문제는 해결이 되지 않자

위스키 제조업자들은 숨어서

밀주-를 만들게 된다.

와인앤모어에서 팔던데? 보드카 취급 받지만

나중에 이 문제는 해결돼서

밀주들이 양지로 나와서

제대로된 숙성을 거친 위스키가 된다.

 

이 위스키들이

양지로 나오면서

매쉬 빌(Mash bill)이 시작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제대로 된 Mash bill이 언제 시작됐는지

기록은 없지만,

1909년에 태프트 대통령이

Decision on Whisky에서

버번은 대부분의 옥수수로 만들어져야 한다!

라고 했었다.

 

제대로된 위스키가 정립됐지만,

미국 전역으로 유행하게 된 계기는

19세기에 찾아온

미국 서부개척시대의 영향이 컸다.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

사람들이 서부로 서부로 가면서

마을을 세우고,

왕래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리고 사람 많은 곳에 세워지는건?

술집이다.

당시에 음주운전도 없으니 뭐..

이 살룬-에서

생겨난 개념이 샷이다.

돈 없던 카우보이들이 총알 하나와

위스키 한잔을 바꿔먹었대서

나온 개념이었다.

1 shot = 1 총알

이런 살룬-문화와 위스키는

미국의 실수. 1919년 금주법의 시행으로

아메리칸 위스키의 전성기가 끝나게 된다.

이 전의 위스키가 맛있었다고들 한다.

금주법이 끝난 1933,

많은 버번 위스키 증류소들이

옛날 맛을 제현하기 시작했고

재 가동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1964

미국 의회에서 버번을 미국 특산물로 지정하고

이때 버번위스키의 조건이 정립된다.

그 조건이란,

1. 미국에서 증류될 것
2. 매쉬빌에는 옥수수가 51%이상 사용될 것
3. 증류한 스피릿이 160 proof를 넘지 않을 것
4. 오크통 통입도수는 125 proof를 넘지 않을 것
5. 오크통은 새로운 오크통을 태운 것 만을 사용할 것
6. 병입도수는 80 proof 이상일 것
7. 물을 제외한 기타 첨가물을 넣지 않을 것

여기 보면, 숙성년수 랑

증류기를 어떤 걸 써야 하는지

숙성장소가

나와있지 않다.

이거대로 하면

51% 옥수수를 포함한 mash bill

미국에서 증류하고,

통입도수를 지켜서

엄지손톱만한 태운 새 오크통에

5초 숙성시켜서 병에 담아도

버번이다.

New charred oak를 쓰지 않아서 버번이라고 못한다.

규정은 7가지 정도가 있다.

이걸 지키지 않으면

버번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가 없다.

호밀이 51%라서 버번이라는 말이 없다.

New charred oak만의 장점으로는

오크나무를 태웠을 때

나무가 갈라지면서 술과 오크나무의

바닐린이나 당과 잘 섞이게 된다.

바닐라 맛이 이거다.

우리가 위스키에서

바닐라 맛을 느낄 수 있는 이유가 된다.

, 버번에는 오크통 사이즈가 정해져있지 않아서

엄지손가락 만한 오크통에 숙성 시켜도

규정만 지키면 버번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자주 보는 버번들에는

대부분 Kentucky straight bourbon이라고 쓰여있다.

straight를 붙이려면 최소

최소 2년 이상 숙성시켜야 하고, 4년 미만의 경우

몇 년 몇 개월인지를 표기해야 한다.

4년을 넘기면 따로 숙성년수를 안써도 된다.

 

지금까지 버번 위스키의 역사와

버번위스키의 조건에 대래서 알아봤다.

한번은 해야지-했었는데

이제야 정리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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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두면 쓸데있는, 버번쟁이 클라이머가 알려주는 술, 운동, 약, 일상에 관한 모든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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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드터키 8년 리뷰 글

 

- 오래도 걸렸죠, 그렇죠?

최근에 정신이 없다 보니

글을 써야지-써야지 하다가

결국, 기절-해버리는

그런 삶을 살았습니다-

오래 기다렸습니다.

기다렸다고 해줘요 어서

 

지금까지 소개한 위스키가

 

버번위스키 입문 3 대장 중

빠빠빠 빨간맛 메이커스 마크

 

메이커스마크 역사글

 

입안에서 날뛰는 칠면조

와일드 터키

 

와일드 터키 역사 글

 

이제 소개할 위스키는

3대장 중에 마지막 하나

버팔로 트레이스

 

물소 추적...

 

현재 운영중인 증류소지만

미국 역사 기념물로 등록돼있는

유서깊은 증류소.

 

폐건물 개조하려고 들어갔더니

1873년에 쓰던 발효조가 발굴이 되는

증류소.

 

경주 같은 존재인가..?

가장 넓은 증류소인

메이커스 마크(1233000)보다

40%정도(533000)이지만

부지 사용 밀도로 보면

훨씬 건물이 많기 때문에

증류소 규모는 메이커스마크보다 크다.

그 땅에 건물로 빽빽하게 다 차있다.

 

빽빽-하네

게다가 숙성창고도 엄청 많고,

다른 주에도 짓고 있고

현재도 늘어나고 있다.

게다가

온도를 조절하는 등

실험적인 숙성방법을 적용하는

숙성창고도 다양하게 시도하고 있다.

 

이렇게 규모가 큰 버팔로 트레이스 증류소

그 역사에 대해 알아보자.

 

버젓이 운영중이지만 기념물...

이름만 들으면

버팔로가 주는 느낌 그대로

엄청나게 거친 느낌이지만

 

푸릉 푸릉-

 

이 이름의 유래는

미 서부개척 시대에

개척되지 않은 길을

개척자들이 지나가기란 어려웠다.

그 개척되지 않은 길에

지나갈 수 있을 만한 길이 나 있었는데,

그게 바로

야생 버팔로가 지나간 길.

그 길을 따라 서부로 나아갔다 하여

그 이름이 물소 추적.

버팔로 트레이스

 

차보다 훨씬 크네...

 

증류소 이름의 유래는 알았으니

이 증류소의 역사를 알아보자.

 

당시에는 버지니아주였지만,

1792년에 주 개편이 되면서

지금은 켄터키주가 된 곳에

핸콕 리와 윌리스 리

(hancock Lee, Willis Lee)

두 이씨 형제가

정착해서 마을을 세우고

이름을 리스타운이라고 지은 것이

1775.

(현재는 Frank port로 바뀌었다.)

 

버지니아에서 켄터키로 독립.

 

리스타운에 있는 그 표지판..

 

그리고 이 리스타운에서

1786에 증류소가 세워졌다.

이 증류소가 현재의

버팔로 트레이스 증류소의

모태가 된다.

 

여기 어딘가쯤 버팔로 트레이스 증류소가...

이 증류소가 아마도 가장 오래된

버번 위스키 증류소라고 할 수 있다.

메이커스마크

단일회사 증류소로는 가장 오래됐고

잭다니엘

가장 먼저 합법적으로 면허를 받았지만,

단일 장소에서 가장 오래된 증류소

버팔로트레이스가 맞긴 하다.

 

조선시대부터 이어져온 전통 증류소 like that.

 

이렇게 서부개척지 한 중간

노른자위 땅에서

개척자 대상으로 장사하고

위스키를 팔면서

돈을 쏠쏠하게 벌고 있다가,

 

그 유명한 사람이

이 부지를 매입한다.

그게 바로

E.H.Taylor

 

원래는 사람이름..! 이 이름의 위스키, Connel E. H. Taylor가 있다.

 

이렇게 인수한 증류소이름을

테일러는 Old Fashioned Copper

로 바꾼다.

 

OFC 증류소 그림.

증류소 운영을 잘 하던 테일러.

그러던 중 1878

또 하나의 전설적인 인물인

George T. Stagg

이 증류소 부지를 매입한다.

이 조지 티 스택은

증류소 이름도

George T. Stagg Distillery로 바꾼다.

 

George T. Stagg. 같은 이름의 그 위스키가 아주 전설이다..

 

그리고 Colonel E.H Taylor를 쫓아낸다.

그리고 Colonel E.H Taylor

조지티스택 증류소가 차려준

Old Taylor 증류소로 독립한다.

 

팽 당한 테일러...

 

1897.

또 하나의 전설적인 인물

Albert Blanton이 입사한다.

 

우리가 아는 그 술, 블랑톤 맞다.

 

이 사람이 전설적인 이유는 바로

1919년에 미국에 불어닥친

버번의 암흑기..

금주법 시대에

증류소 문을 닫지않고 버텨냈다.

 

술...술을 줘라..!

 

블랑톤은 이 금주법을 어떻게 버텨냈나

하면, 의료용 위스키를 만들겠다고

정부랑 협상을 봤다.

 

역시 머리를..잘굴렸어...

 

지금 현재도 마약 중독자에게

마약을 일부 처방하고

우울증 환자에게 향정신성의약품을 처방하듯

당시에는 우울증 및 알코올 중독자에게

위스키를 처방하곤 했다.

, 술을 사려면 처방전이 있어야 했다.

그 처방전도 응급용. 이라는 그 한마디면

술을 처방받을 수 있었다고...

처방 수는 셀 수 없을 정도

 

처방전 참 간단하네... 위조도 되겠다.

 

그러던 1949, 또 하나의 전설적 인물

Elmer T. Lee가 이 증류소에

입사하게 된다.

 

또 다른 이씨... 이 이름으로 난 술도 있다.

 

금주법도 버텨냈지만, 그들에게는

버번에게는 또 불어닥친 시련이 있었다.

바로

Glut Era.

1970년대부터 시작한

버번의 미래가 보이지 않던 그 시절.

 

눈감아봐, 그게 니 미래야^^

 

light whiskey로도 만들어 보고

블렌딩도 해보고 별 짓을 다했었다.

 

이 난항을 겪던 도중 등장한

일본회사.

타카라 슈조(宝酒造)

 

곤니치와...

 

그가 조지 티 스택 증류소의

25% 지분을 매수한다.

그리고 내건 조건.

나머지 75%의 지분도

내가 원할 수 있을 때 살 수 있어야 한다.”

“75%의 지분을 판매할 때도

30일 전에 나에게 통보해야 한다.”

 

딜? 딜.

 

그리고 사정이 좋아지지 않았던

조지 티 스택 증류소는

일본회사에게

Sezrac에게 증류소를 넘기겠다고

통보.

그러나 그 일본회사는

29일이 지나도 대답이 없었다.

 

묵-묵-부-답

 

그리고 30일이 되던 날!

일본인이 그 증류소를 사겠다고

대답해왔다.

 

돈...준비하는 시간이...^^

그리고 그 일본사람은

1992년에 바로 사제락에

조지 티 스택 증류소를 넘긴다.

머리 진짜 잘쓴다..

그리고 남긴 또 하나의 딜.

이 증류소의 메쉬빌 No.2

일본으로만 수출한다.”

 

그렇게 미국에는 없는

블랑톤 straight from the barrel 등은

일본에서는 구할 수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진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사제락(Sazerac)

조지티스택 증류소를 인수한다.

그리고 1999에 증류소 이름을

드디어

버팔로 트레이스라고 짓는다.

하지만, 여전히 법적 명칭은

조지 티 스택 증류소이다.

 

물소-추적!

 

그로부터 2년 뒤.

2001에 이 증류소는

단일 증류소로는 가장 오래 됐기에

미국 사적지로 등록이 된다.

 

이곳이 버번의 역사다-이말이야

 

그리고 2013에는

미국 국립 역사 기념물로 지정된다.

버젓이 사람들이 일하고 있는데

역사 기념물이다.

 

증류소에 사람있어요!

 

지금까지

버번위스키 입문 3대장

그 마지막 하나인

버팔로 트레이스 증류소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았다.

다음번엔 버팔로 트레이스 증류소의

역대 제품군에 대해 설명 하려고 한다.

 

지금까지 알아두면 쓸데있는

어디가서 아는 척 하기 좋은 잡지식

잡학사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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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미 픽미 픽미업

이 노래가 유행 하던게 지금으로부터 약 5년 전.

입덕하기에 충분한 여돌 연습생들의 라이브 오디션.

프로듀스 101.

 

사랑해요 IOI

 

프로듀스 101과 이름만 같지만

조류가 마스코트인 버번 위스키.

그게 바로 이 녀석.

야생칠면조 와일드터키101.

 

왜 뭐 왜왜 뭐

 

많은 사람들이 버번 입문 3대장 중에서

가장 자극적이라고 손꼽히는 칠면조.

이름 그대로 입안에서 칠면조가 뛰어 논다는 그 버번.

지난 메이커스마크와 다르게 E가 들어가는 버번 위스키.

와일드터키 101을 만들어내는 와일드터키에 대해서 알아보자.

 

메이커스 마크에 관한 이야기는 여기로

 

2021/01/23 - [술_스토리] - 핸드메이드 감성 위스키, 메이커스마크(maker's mark)

 

꽥-꽥- 진짜 이렇게 우나..?

 

현재 와일드터키 증류소는 캄파리의 소유이다.

 

내꺼여-건들지 마러-

 

이 전에는 압생트 회사지만 많은 주류를 소유한

페로노 리카.

 

내꺼였는데...

 

하지만! 대기업과 상관없이

와일드터키의 중심을 잡고있는 부자가 있다.

바로 지미 러셀과 에디 러셀.

 

 

대기업이 위스키를 소유하면 맛의 변화나

새로운 에디션을 내거나 하는 휘청거림이 있는데,

이들 부자는 그런 것 없이

와일드터키의 QC를 책임져 왔다.

그리고..!

최근에는 그들의 손자인

브루스 러셀이 증류소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라이 위스키의 팬이라고.

 

자 그럼.

에디 러셀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를 해보자.

 

와일드터키는 두가지 굵직한 회사가 함께한다.

바로

증류소 설립자인 라이피(Ripy) 가문과

도매회사인 오스틴 니콜스(Austin Nichols).

 

 

1830년에 아일랜드 계열인 라이피 가문이

새 삶을 찾아 미국에 정착.

그 곳에서 선조들이 그러했듯

잉여작물로 위스키를 따란-.

 

타국에서도 잊을 수 없는 아이리쉬-위스키

(타국에서도 잊을 수 없는 아이리쉬-위스키)

 

그러던 1850.

훗날 야생칠면조 와일드터키 언덕이라고 불릴 곳에

올드 무레(Old Moore) 증류소를 세워진다.

이때까지만 해도 라이피 가문은 이 증류소를 사지 않았다.

 

올드 탐 무레 증류소. 올드 무레도 비슷한 모습일듯

 

1869년에 본격적으로

켄터키에 있는

클리프 스프링 증류소(Cliff Spring Distillery)에서

증류소 일을 시작하게 된.

토마스 비비 라이피(Thomas Beebe Ripy).

 

네 접니다 T.B. Ripy

1888. 증류소에 대한 짬밥도 키워온 Ripy가문은

올드 무레 증류소를 인수.

1891년에는 Old Hickory Springs증류소를

그 자리에 세우게 된다.

 

(올드힉토리 위스키)

그때 당시 old hickory(추정)

 

그리고 1894년에 첫 웨어하우스인

Rickhouse A가 지어지게 된다.

 

저 시커먼게 다 곰팡이다.

 

토마스 라이피는 이 증류소에서 나온 버번을

독립병입을 하는 여러 도매상에게 팔았고,

그중에 하나가 바로

와일드 터키에 큰 영향을 끼친

Austin Nichols.

 

마트 같은 느낌의 도매 회사다.

 

그러던 1919...

대한제국은 3.1운동을 하고 있을 즈음.

 

대한독립 만세!

 

오래된 버번 위스키라면

겪게되는 암흑기가 찾아온다.

바로 금주법(Prohibition)

 

술..!술을 줘라..!

이때 여느 버번 위스키들이 그러했듯이

와일드 터키, 당시 올드 힉터 또한

증류소 문을 닫게 된다.

 

이 금주법도 오래가지 못하고, 1933년에 끝나게 된다.

금주법 이후에 증류소를 재 정비하고 다시 열기 시작한게

1935.

이때 이름을

이 증류소의 최초 인수자 이름인

Ripy brothers 증류소 라고 정한다.

 

Ripy- brothers~!

 

1936.

이때 나오는 와일드터키 이름의 유래.

Austin Nichols사의 임원이었던

Thomas McCarthy.

 

야칠 내가 만들었지-

 

이때 그는 친구와의 야생 칠면조 사냥에

술이 빠질 수 없다고 생각.

본인이 가지고 있던 위스키의 샘플을 챙겨간다.

 

오놀아놈???

이때 그 친구들이 그 위스키 맛이 좋자

친구들은

그때 야생 칠면조 사냥때 마셨던 술 있냐?”

요청하게 되고, 그렇게 정해진 브랜드 네임

야생 칠면조 와일드 터키.

 

치..칠면조가 보고있다.

여기서 길을 본 Austin Nichols

1939,

식료품 사업을 접고, 주류 사업에 뛰어들고,

 

브랜드 네임을 정하고 4년 뒤.

1940년에 첫 와일드 터키 배치가 병입.

 

1942년에는 Austin Nichols

자신들만의 Wild turkey 제품으로 판매하게 된게

와일드터키 101.(따란-)

 

 

101proof 8 years old

 

이때의 와일드터키의 메쉬빌이

옥수수 75% / 호밀 13% / 맥아 12%

 

왼쪽이 버번 위스키의 메쉬빌

 

그렇게 위스키를 잘 팔아 오다가

1949년에 Goulds에 인수되게 되고

증류소 이름도 J.T.S Brown 증류소

(Boulevard 증류소)로 바뀐다.

 

증류소가 인수되고 1년 뒤

출시된 와일드 터키 라이.

 

옛날 와일드터키 라이

이때의 메쉬빌이

호밀 65%, 옥수수 23%, 맥아 12%.

 

오른쪽이 라이 위스키의 메쉬빌

지금까지

와일드터키의 그 출발부터

라이 위스키까지 알아보았다.

다음편은

러셀 가문의 입사에서부터 시작하려고 한다.

 

지금까지

알아두면 쓸데있는

어디가서 아는 척 하기 좋은 잡지식

잡학사전이었습니다.

다음에 만나요 제발

 


WRITTEN BY
버클_bourcl
알아두면 쓸데있는, 버번쟁이 클라이머가 알려주는 술, 운동, 약, 일상에 관한 모든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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