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왜- 이런 정보글이 올라오나- 궁금하신 분이 계실지도 모르지만- 이번 글은 어떻게 보면 헌정 글이고 어떻게 보면 강의 글이고- 또 어떻게 보면 요약 글-입니다

과연 버번 붐은 왜 시작 됐을까

그런데 이 글을 왜 썼냐- 왜 쓸 생각이 들었냐-하면, 술에 대해서 공부하고 싶어하는 한 친구의 질문에서 시작된-글입니다. 상당히 술에 열정을 가지고 있는 이 친구가

최근들어서 위스키가 갑자기 젊은층에서 인기가 많아진 것 같은데 그 이유가 뭐냐- 갑자기 인기가 많아지려면 분명히 이유가 있을것인데, 어떻게 해야 되냐?

라고 물어보길래 머릿속에 떠오른 사건이 있었습니다. 바로 버번 붐.

옛날엔 저렴한 술이었는데 분명히

 

“버번 붐(Bourbon boom)이 도대체 뭔데?”

 

버번 붐 얘기에 들어가기에 앞서 버번 붐 (Bourbon boom)이 뭔지에 대해 먼저 설명해야 합니다.

갑자기 폭등한 판매량

버번 붐이라는 말 그 자체를 보면, 버번과 폭탄을 뜻하는 붐의 합성입니다. 그 말뜻을 설명하자면-  우리가 흔히 50-60년대 태어나신 분들을 베이비 부머 세대라고 불르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출생률이 폭증했던 시기를 의미하죠. 이와 같은 말로써, 버번붐이라는 현상/시기는 버번의 판매량이 폭팔적으로 증가한 시기를 의미합니다.

그럼 버번 판매량이 급증한게 굳이 용어까지 만들 필요가 있을 정도로 중요한 사건이 됐냐? 스카치는 따로 스카치 붐 이런 용어 없지 않냐- 하고 물으신다면, 버번 붐 이전의 버번은 존망을 고민할 정도로 정말 '더럽게' 안 팔렸습니다.

 

“Glut era?”

 

버번붐 이전에 버번은 존망을 고민할 정도로 안팔렸다고 얘기 드렸습니다. 그 시기를 미국에서는 Bourbon glut era라고 부릅니다. 그러니까 버번 붐을 알기 위해서는 1960년대부터 1980년대 더 나아가서 2000년대 초반까지 버번이 너무 안 팔려서 고숙성 버번이 넘쳐나는 시기였던 Glut era를 알고 지나가야 합니다. 이 당시의 버번업계는 버번이 너무 팔리지 않아서 도자기 같은 기념품에 넣어 우연히 술을 판매한다거나, 8년짜리 버번에 16년 숙성 버번 원액이 들어가거나 하는, 어떻게 보면 버번의 퀄리티에 있어서는 황금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근데 이렇게 남아돌정도로 왜 버번이 안팔리고 있었는가 하면,

보드카 마티니. 젓지말고 흔들어서

1962년부터 제작되어 미국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영국 해군소속 엘리트 첩보요원인 제임스 본드가 나오는 007의 영향이 굉장히큽니다. 역사적으로 미국은 유럽의 문화와 풍습을 굉장히 동경해오기도 했고, 돈을 벌면 유럽 귀족처럼 꾸미고 사는 것이 성공한 삶이라는 인식이 남아있을 때였습니다. 그런 문화 속에서 공산당을 물리치는 강력함과 그 속에 보이는 매너 가득한 영국 신사인 제임스 본드가 우아하게 보드카를 마시는 그런 모습에 많은 미국 젊은이들이 매료됐거든요. 비슷하게 영국에서 인기를 끄는, 그리고 마티니에 기주였던 진까지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됩니다.

 

게다가-

미국에 보드카가 퍼지게 된 계기

모스코 뮬이라는 칵테일과 함께 스미노프가 미국내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게 되면서 그 당시 미국에서는 미국의 젊은이! 힙스터! 하면 보드카와 진을 마시는 유행생겼습니다. 그에 반해서 원래 미국의 전통술이었던 버번위스키는 소위 노땅들의 술이라는 인식이 강하게 박혔습니다.

서부시대 총잡이가 들이키는 그런 술

그러면서 점-점 버번들은 정말 찾는 사람만 찾을 정도로 잊혀져 가고 이때 많은 증류소들이 재정난을 참지 못하고

문을 닫거나 이리저리 매각 당하는 등, 안타까운 사태들이 발생합니다. 하지만, 암흑기가 있으면 저항세력도 있는 법. 이 Glut era를 극복하려고 노력한 여러 증류소들이 있었습니다.

 

“Glut era 극복기”

 

glut era에는 많은 증류소들이 이리저리 인수되거나 문을 닫거나 하면서 버티게 됩니다. 일부 증류소에서는 light whiskey라고 해서 최대한 보드카와 비슷한 느낌의 가벼운 버번을 출시하기도 하면서 보드카나 진의 인기를 조금이나마 따라가려고 했으나- 가벼운느낌을 원하면 더 싼 보드카 마시지 그런 증류소는 얼마 버티지 못하고 망하던 그런 시기였습니다. 그 와중에 이를 버티기 위해서 자신의 길을 고수하던 증류소들이 있었으니-

질면조도 어려웠습니다.

일례로 와일드터키의 전설적인 마스터 디스틸러이자 리빙 레전드인 지미 러셀 옹께서도 glut era당시에 버번이 팔리지 않자 마스터 디스틸러 본인이 트럭에 버번을 싣고 가서 직접 마스터 클래스를 진행하는 등 발품을 팔아서 판매하는 열정을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버번의 맛을 잃지않고 꾸준히 개발해 나가거나 블렌딩을 통해 러셀리저브 10년 101을 출시하는 등. 꾸준한 고급화를 이어나가던 증류소였습니다.

지금의 버번 붐을 있게 한 장본인

버팔로트레이스, 당시에는 George T. Stagg증류소는 야금야금 어딘가로 팔리다가 한 곳으로 인수 됩니다. 그게 바로 일본의 타카라 슈조. 하지만 바로 직후 사제락에 인수되죠. 일본의 타카라 슈조에서 사제락에 인수됐지만 버팔로 트레이스 증류소 제품들은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어서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이런 해외 수출 관련한 내용은 다음편에 다뤄보도록 하죠. 사제락에 인수된 버팔로 트레이스 증류소. 그러나 이때 당시의 계약조건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것이 있어서 지금도 Mash bill number 2일본에서만 판매됩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블랜튼 입니다.

존윅의 버번인데 일본에만 판매중-

 

에반 윌리엄스로 살아가는

헤븐힐 증류소는 glut era당시에 에반윌리엄스의 맛과 향은 유지하되 광고를 다르게 하는 전략을 세웠습니다. 좀 더 가볍게 즐기고 싶다면 에반윌리엄스에 콜라를 섞어 마셔도 좋다 라는 캐치프레이즈처럼, 가볍고 파티에 즐길 수 있는 술이라는 인식을 심어준다다는 전략 입니다. 이와 더불어 신문인터뷰에서 밝힌 바와 같이 버번이 늙은 카우보이가 급하게 마시는 낡은 이미지를 탈피해야 함을 강조했습니다이런 이미지 메이킹을 통해서 에반윌리엄스는 glut era에서도 살아남았죠.

왁스탑으로 유명한 그 버번

메이커스마크를 금주법 이후에 다시 세운건 빌 새뮤얼스입니다. 그러나 메이커스마크가 다시 인기를 끌게 된건

그의 아들이었던, NASA에서 로켓 엔진 만들다가 주류사업에 뛰어든 빌 새뮤얼스 주니어 덕분입니다. 이분은 걸어 다니는 전광판이라고 불릴 정도로 광고의 천재였다고 불립니다. 물론- 본인 자체도 엄청 튀기도 했구요. 어느 파티에서도 눈에 띄었고 광고도 이때까지보다 재밌는 방식으로 하는 신기한 노선을 타게 됩니다.

지금도 메이커스마크 광고는 재밌습니다.

재밌는 광고와 잘 튀는 아이디어로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고, glut era를 버티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메이커스마크 증류소는 짐빔에 인수되고 이 짐빔이 산토리에 인수되고 난 뒤 세계 판매량이 늘어나면서 상황이 나아진 버번 브랜드였습니다. 물론 고급화 전략도 꾸준히 유지했구요.

 

다른 증류소들도 이야기할 것이 더 많지만- 어유..벌써 이렇게 말이 길어졌네요. 곧이어 2편에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2편에서는 본격적으로 어떻게 버번 붐이 일어나게 됐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 다뤄 보도록 하겠습니다.

 

2편이 궁금하시다면 아래 링크를 클릭하시기 바랍니다.

 

버번 붐(Bourbon boom)이 시작된 이유는 뭘까? -2편-

지난1편에서는 증류소들이 glut era에 어떻게 버텼는지에 대해 알아 봤습니다- 하지만 버번 붐이 왜 어떻게 오게 됐는지는 아직 얘기가 나오지 않았죠. 그게 원래 목적인데 말이죠.. 그래서 이번

liquorstroy.tistory.com

 

지금까지 알아두면 쓸데있는 버번쟁이 클라이머가 들려주는 술에 관한 이야기 버클술이의 버클 이었습니다내용이 유익했다면 공감 한번씩 눌러주시고, 누구보다 빠르게 보고 싶으시다 하시면 이웃추가/구독 부탁드립니다. 다음에 또 만나요 제발

 

 

 

 

 

 

 

 


WRITTEN BY
버클_bourcl
알아두면 쓸데있는, 버번쟁이 클라이머가 알려주는 술, 운동, 약, 일상에 관한 모든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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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빠빠 빠알간 왁스탑으로 봉인된 버번 위스키
첫 위스키로 고른 버번 위스키.
그건 바로 메밀막걸리 메이커스 마크(장인의 표식)

 

메밀맠걸리

 

버번 중에서 몇 안되는 ‘E’가 없는 위스키 이기도 하고
버번 입문 3대장 중 하나로 자리하고 있는 바로 그 버번.
빨간 왁스탑과 수작업으로 만든다는 것이 특징인 바로 그 술.
이 수작업(handmade)라는 말 때문에 고소도 당한다.
수작업이라는 컨셉에 맞게,
19개 배럴로 이루어진 스몰 배치로 생산을 한다.
그만큼 처음에 나왔을 때 프리미엄 위스키로 광고했다.

 

고급위스키고 아무한테 안판다뇨..?

 

 

켄터키 주에 있는 증류소 중에서
가장 넓은 부지를 소유하고 있는 증류소. aka 땅부자

 

사진보다 더 큰면적을 소유중.. 왼편에 건물들이 증류소

 

그 면적이 무려 축구장의 570배.(약 1233000평 정도)
하지만 그중에 증류소로 사용하는 면적은 극히 일부.

 

한층 더 작아보이는 증류소 건물☆

 

그럼 나머지 땅은 뭐여? 농사짓는겨?
라고 할 수 있지만 위스키에서 가장 중요한

 

물!
메이커스 마크의 수원지를 보호하기 위해
수원으로 사용하는 호수 주변을 전부 매입했다고 한다.
사람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기 때문에
실제로 주변에는 공해가 거의 없다고..

 

우리도 이런데 갖고있지...

메이커스마크는 빌 새뮤얼스가 최초 설립자다.
여전히 메이커스마크를 경영하고 있는 것도
이 새뮤얼스 가문.

 

새뮤얼스 가문이
스코틀랜드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게 1680년대.
그때 정착한 곳이 팬실베니아 주.

 

 

이곳에 정착해 농사를 짓고,
거기서 남는 작물로 발효하고 증류해서 위스키를 딱.
자기 선조들이 했던 것처럼 술을 빚으며 살고 있었다.
타국 땅에서도 잊을 수 없는 그 맛. 스카치위스키 like that.

 

특급 스카-치 위스키 패스포-트

 

한 세기 정도 펜실베니아에서 농사 지으며 살다가
1784년에 버지니아주로 옮겨가게 된다.

 

가로로 길던 버지니아주

하지만 그 지역은 1792년에
버지니아에서 켄터키로 분리되면서
이사를 한 번 더 하지 않고
켄터기주에 정착.
마산, 창원, 진해가 합쳐서 창원이 되듯이..

 

캔터키주는 1792년 분리됐다

 

켄터키에서도 이 전 세대가 그랬듯이 살아간다.
동네사람들한테 자기네 술도 만들어 나눠주면서.
공짜 마케팅 반응이 좋자
1840년에 이 술로 정식 면허를 신청한다.
이 면허를 신청한 사람이
테일러 윌리엄스 새뮤얼스.

 

당장이라도 재밌는 얘기 해주실것 같음

 

그러나
옛날 미국 술이라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그 시기,
금주법이 1919년에 시행된다.
미국정부 이 나쁘..ㄴ....

 

미국 내에서 금주지만, 밀주는 계속됐다.

 

이 금주법은 1933년에 끝나게 된다.
다시 문을 열고 위스키를 만들었는데

 

이게 뭐야 옛날 맛이 안나잖아?

오랜만에 만든 위스키에서는

옛날 그 맛을 낼 수 없게 됐고

퀄리티 컨트롤이 안되니 문을 다시 닫게 된다.
그리고 연구를 시작한다.


그중 1952년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그때
지금 있는 메이커스마크 부지를 매입한다.

 

딴다단단 단단♪

이 부지를 매입한 날에 빌 새뮤얼스가

 

포포몬쓰..!

포포몬쓰를 하나 보여준다.
바로 새뮤얼스 가문의 위스키 레시피를 태운 것.

 

화륵-(죽지마요 에이스 ㅠㅠ)

 

그러나 이 레시피의 불은 커텐으로 옮겨가
그의 딸이 화상을 입을 뻔했다고..

이제 새로운 곡물비율(메쉬빌)이 필요해진 빌 아저씨..

 

왜 태웠지...

 

위스키가 며칠 만에 맛볼 수 있는게 아니고
맛이 상상도 안가던 차에
번뜩이는 그의 아이디어!
메쉬빌도 어차피 곡물이고,
효모를 쓰는 것도 같으니
빵을 만들어 먹게 된다.
빵 구워먹고
가장 맛있는 맛을 가족회의를 통해 선택한 것이
옥수수 70%, 몰트 14%, 붉은 겨울 밀 16%.

호밀이 들어가지 않은
밀 버번, Wheated Bourbon이 되는 순간. 따란.

 

1958년 5월 8일 첫 병입시 전 직원 사인이 들어간 메맠


이제 제품을 출시해야 하는데,
로고를 정한다.

 

 

별은 증류소 부지인 star hill farm
S는 새뮤얼스 가문
로마 숫자 4는 4대 째라는 의미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빌 아저씨는
자기가 4대째 증류사업자인줄 알았다.

원래는 6대째
그러나 면허 취득하지 않고 증류했던
2대 선조를 빼먹었다..)

 

이제 마케팅을 위해 가족회의를 한다.
(또..?)
여기서 혁혁한 공을 세운 분이
빌 아저씨 부인인 마저리 새뮤얼스.

 

 

이 가족회의를 통해서
지금의 메맠 상징인 왁스탑 디자인,
옆으로 뚱뚱한 사각병,
핸드메이드 마케팅,
그리고 가장 중요한 메이커스 마크
라는 이름도 탄생한다.
우리 위스키도 장인의 생산품이라면서.
이 모두 마저리 새뮤얼스의 아이디어였다.

 

 

초반에 빌 새뮤얼스는 그녀의 아이디어에
반대를 했지만, 그녀는 대학 동창인 그에게
이렇게 설득했다.
“너랑 나, 둘중에 누가 공부 잘했어?”
(마저리는 수석이었고, 빌은 그와 반대였다.)
결국 그녀의 말을 들었고,
메이커스 마크는 성공의 반열에 올랐다.
여자친구, 아내말을 잘듣자

이외에도 증류소 투어 프로그램도 만들었다.
“언제든지 우리 증류소에 와서 위스키를 맛보고
체험해보세요” 라는 식.

 

언제든지 근처에 있으면 놀러 오세요!

 

가정집에 초대하는 분위기에 투어 장소도 가정집 느낌.

 

가정집 분위기

 

여기서 왁스탑을 찍어 볼 수도 있는데,
사람마다 다 제각각이다.

 

oops bottle이라고 부른다(우측)

 

이 덕분에 마저리 새뮤얼스는
버번 명예의 전당에 여성으로서 최초로 이름을 올렸다.

언제나 기본 모델만 만들던 메맠이
90proof에서 86proof로 낮추겠다고 발표한 적이 있고
실제로 한번 낮췄다.

도수를 낮추다니 이 나쁜사람들..

 

진짜로 낮췄어..! 그런데 지금은 이게 한정판임.

이유는 재고 부족.
그러나 알중들은 알콜 도수가 낮아지는건 용납 못한다.
엄청난 반발 끝에
45도(90proof)로 다시 올리겠다고 했다.
이게 2013년의 일이다.

 

그러나.. 부족하다던 재고와 다르게 메이커스마크는
바로 직후 새로운 라인업을 내놨다.

 

이 외에도 CS, 45 등등 많은 프리미엄 라인이 나옴

 

과연 정말 원액이 부족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아무래도 프리미엄 라인을 위한

노이즈 마케팅의 일환이 아니었을까.

이외에도 위의 왁스탑 색을 바꾼
여러 가지 콜렉터블 제품이 많이 나오고 있으니 참고.

 

긴 글이었지만 메이커스마크의 역사에 대해 알아봤다.

부족한 점도 있겠지만
어딘가에서 아는척하기 좋은
알아두면 쓸데 있는 잡지식
잡학사전이었습니다.

다음에 만나요(제발..)

 


WRITTEN BY
버클_bourcl
알아두면 쓸데있는, 버번쟁이 클라이머가 알려주는 술, 운동, 약, 일상에 관한 모든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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