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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빠빠 빠알간 왁스탑으로 봉인된 버번 위스키
첫 위스키로 고른 버번 위스키.
그건 바로 메밀막걸리 메이커스 마크(장인의 표식)

 

메밀맠걸리

 

버번 중에서 몇 안되는 ‘E’가 없는 위스키 이기도 하고
버번 입문 3대장 중 하나로 자리하고 있는 바로 그 버번.
빨간 왁스탑과 수작업으로 만든다는 것이 특징인 바로 그 술.
이 수작업(handmade)라는 말 때문에 고소도 당한다.
수작업이라는 컨셉에 맞게,
19개 배럴로 이루어진 스몰 배치로 생산을 한다.
그만큼 처음에 나왔을 때 프리미엄 위스키로 광고했다.

 

고급위스키고 아무한테 안판다뇨..?

 

 

켄터키 주에 있는 증류소 중에서
가장 넓은 부지를 소유하고 있는 증류소. aka 땅부자

 

사진보다 더 큰면적을 소유중.. 왼편에 건물들이 증류소

 

그 면적이 무려 축구장의 570배.(약 1233000평 정도)
하지만 그중에 증류소로 사용하는 면적은 극히 일부.

 

한층 더 작아보이는 증류소 건물☆

 

그럼 나머지 땅은 뭐여? 농사짓는겨?
라고 할 수 있지만 위스키에서 가장 중요한

 

물!
메이커스 마크의 수원지를 보호하기 위해
수원으로 사용하는 호수 주변을 전부 매입했다고 한다.
사람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기 때문에
실제로 주변에는 공해가 거의 없다고..

 

우리도 이런데 갖고있지...

메이커스마크는 빌 새뮤얼스가 최초 설립자다.
여전히 메이커스마크를 경영하고 있는 것도
이 새뮤얼스 가문.

 

새뮤얼스 가문이
스코틀랜드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게 1680년대.
그때 정착한 곳이 팬실베니아 주.

 

 

이곳에 정착해 농사를 짓고,
거기서 남는 작물로 발효하고 증류해서 위스키를 딱.
자기 선조들이 했던 것처럼 술을 빚으며 살고 있었다.
타국 땅에서도 잊을 수 없는 그 맛. 스카치위스키 like that.

 

특급 스카-치 위스키 패스포-트

 

한 세기 정도 펜실베니아에서 농사 지으며 살다가
1784년에 버지니아주로 옮겨가게 된다.

 

가로로 길던 버지니아주

하지만 그 지역은 1792년에
버지니아에서 켄터키로 분리되면서
이사를 한 번 더 하지 않고
켄터기주에 정착.
마산, 창원, 진해가 합쳐서 창원이 되듯이..

 

캔터키주는 1792년 분리됐다

 

켄터키에서도 이 전 세대가 그랬듯이 살아간다.
동네사람들한테 자기네 술도 만들어 나눠주면서.
공짜 마케팅 반응이 좋자
1840년에 이 술로 정식 면허를 신청한다.
이 면허를 신청한 사람이
테일러 윌리엄스 새뮤얼스.

 

당장이라도 재밌는 얘기 해주실것 같음

 

그러나
옛날 미국 술이라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그 시기,
금주법이 1919년에 시행된다.
미국정부 이 나쁘..ㄴ....

 

미국 내에서 금주지만, 밀주는 계속됐다.

 

이 금주법은 1933년에 끝나게 된다.
다시 문을 열고 위스키를 만들었는데

 

이게 뭐야 옛날 맛이 안나잖아?

오랜만에 만든 위스키에서는

옛날 그 맛을 낼 수 없게 됐고

퀄리티 컨트롤이 안되니 문을 다시 닫게 된다.
그리고 연구를 시작한다.


그중 1952년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그때
지금 있는 메이커스마크 부지를 매입한다.

 

딴다단단 단단♪

이 부지를 매입한 날에 빌 새뮤얼스가

 

포포몬쓰..!

포포몬쓰를 하나 보여준다.
바로 새뮤얼스 가문의 위스키 레시피를 태운 것.

 

화륵-(죽지마요 에이스 ㅠㅠ)

 

그러나 이 레시피의 불은 커텐으로 옮겨가
그의 딸이 화상을 입을 뻔했다고..

이제 새로운 곡물비율(메쉬빌)이 필요해진 빌 아저씨..

 

왜 태웠지...

 

위스키가 며칠 만에 맛볼 수 있는게 아니고
맛이 상상도 안가던 차에
번뜩이는 그의 아이디어!
메쉬빌도 어차피 곡물이고,
효모를 쓰는 것도 같으니
빵을 만들어 먹게 된다.
빵 구워먹고
가장 맛있는 맛을 가족회의를 통해 선택한 것이
옥수수 70%, 몰트 14%, 붉은 겨울 밀 16%.

호밀이 들어가지 않은
밀 버번, Wheated Bourbon이 되는 순간. 따란.

 

1958년 5월 8일 첫 병입시 전 직원 사인이 들어간 메맠


이제 제품을 출시해야 하는데,
로고를 정한다.

 

 

별은 증류소 부지인 star hill farm
S는 새뮤얼스 가문
로마 숫자 4는 4대 째라는 의미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빌 아저씨는
자기가 4대째 증류사업자인줄 알았다.

원래는 6대째
그러나 면허 취득하지 않고 증류했던
2대 선조를 빼먹었다..)

 

이제 마케팅을 위해 가족회의를 한다.
(또..?)
여기서 혁혁한 공을 세운 분이
빌 아저씨 부인인 마저리 새뮤얼스.

 

 

이 가족회의를 통해서
지금의 메맠 상징인 왁스탑 디자인,
옆으로 뚱뚱한 사각병,
핸드메이드 마케팅,
그리고 가장 중요한 메이커스 마크
라는 이름도 탄생한다.
우리 위스키도 장인의 생산품이라면서.
이 모두 마저리 새뮤얼스의 아이디어였다.

 

 

초반에 빌 새뮤얼스는 그녀의 아이디어에
반대를 했지만, 그녀는 대학 동창인 그에게
이렇게 설득했다.
“너랑 나, 둘중에 누가 공부 잘했어?”
(마저리는 수석이었고, 빌은 그와 반대였다.)
결국 그녀의 말을 들었고,
메이커스 마크는 성공의 반열에 올랐다.
여자친구, 아내말을 잘듣자

이외에도 증류소 투어 프로그램도 만들었다.
“언제든지 우리 증류소에 와서 위스키를 맛보고
체험해보세요” 라는 식.

 

언제든지 근처에 있으면 놀러 오세요!

 

가정집에 초대하는 분위기에 투어 장소도 가정집 느낌.

 

가정집 분위기

 

여기서 왁스탑을 찍어 볼 수도 있는데,
사람마다 다 제각각이다.

 

oops bottle이라고 부른다(우측)

 

이 덕분에 마저리 새뮤얼스는
버번 명예의 전당에 여성으로서 최초로 이름을 올렸다.

언제나 기본 모델만 만들던 메맠이
90proof에서 86proof로 낮추겠다고 발표한 적이 있고
실제로 한번 낮췄다.

도수를 낮추다니 이 나쁜사람들..

 

진짜로 낮췄어..! 그런데 지금은 이게 한정판임.

이유는 재고 부족.
그러나 알중들은 알콜 도수가 낮아지는건 용납 못한다.
엄청난 반발 끝에
45도(90proof)로 다시 올리겠다고 했다.
이게 2013년의 일이다.

 

그러나.. 부족하다던 재고와 다르게 메이커스마크는
바로 직후 새로운 라인업을 내놨다.

 

이 외에도 CS, 45 등등 많은 프리미엄 라인이 나옴

 

과연 정말 원액이 부족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아무래도 프리미엄 라인을 위한

노이즈 마케팅의 일환이 아니었을까.

이외에도 위의 왁스탑 색을 바꾼
여러 가지 콜렉터블 제품이 많이 나오고 있으니 참고.

 

긴 글이었지만 메이커스마크의 역사에 대해 알아봤다.

부족한 점도 있겠지만
어딘가에서 아는척하기 좋은
알아두면 쓸데 있는 잡지식
잡학사전이었습니다.

다음에 만나요(제발..)

 


WRITTEN BY
버클_bourcl
알아두면 쓸데있는, 버번쟁이 클라이머가 알려주는 술, 운동, 약, 일상에 관한 모든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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